목회자로서 나는 항상 약하고 초라한 것을 귀중히 여겼다. 그래서 적지 않은 세월을 교회가 아예 없거나 산간오지에서 시골 교회를 섬겼다. 세상에서 가장 외진 시골이면 거기가 더 좋았고, 마을에서 십 여리나 떨어진 곳에 홀로 있는 집이면 보석처럼 보였다.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창 밖에 보이는 외진 시골 마을은 아름다운 나의 일터로 보였다.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가는 곳마다 교회가 생기고 전도가 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시골 인심이란 우리가 가만히 있어만 그들과 함께 있어만 주어도 우리를 좋게 보며 그들이 교회에 나오고 싶어했다.
나의 생각은 언제나 소박했고 하나님이 내 앞에 두신 것들을 사역의 대상으로 삼았다. 더 바랄 필요도 없었고 더 달라고 구할 필요도 없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여겼다. 이런 목회관으로 사는 동안 세월은 흘렀고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다.
오십 중반의 나이에 아직도 개척의 사역을 즐거이(?) 하고 있다. 한 곳에서 오래 사역한 친구들은 이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데 또 다시 묘목을 가꾸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 무엇인지,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나 하는 건지 나 자신이 도무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하지만 목회의 패턴은 더욱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며 사역하도록 우릴 놔두지 않는다. 여기저기에 개성 만점의 목회가 눈에 띈다. 각종 이벤트가 성행하고 대형 세미나가 세몰이에 나서고 있다.
오늘도 지역 내 대형 마트가 들어선다고 재래 상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대형 마트가 들어서면 지역 상권이 다 죽는다는 것이다. 구멍가게는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수퍼나 심지어 지하상가도 끝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어디 시장뿐이라던가? 대형 마트의 편리성을 실감한 성도들이 대형 교회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그만 둘 수도 계속할 수도 없는 여러 교회들이 있다. 그 중 한 교회의 사모님이 며칠 전 목멘 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어려운 개척 살림에 소위 ‘부도’가 난 것이다. 이런 교회들의 암담한 현실은 한국교회의 미래가 될 것이 뻔하다.
이제까지는 개척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한 성도들이 더 큰 교회로, 다시 더 큰 교회로 결국 지역 내 가장 큰 교회에 안착했으나 지금은 그나마 개척 교회들이 더 큰 교회들에게 보낼 성도들도 남아있지 않다. 이미 작은 교회들은 고갈이 된 것이다. 작은 교회가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큰 교회도 살 수 있는 것을 알기나 하는 건지....
‘천수답’이란 인위적으로 물을 댈 수 없는 높은 지대의 작은 논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 허사다. 그러나 낮은 지대의 몫이 좋은 논은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논에는 언제고 물을 끌어들일 수 있는 수로가 있기 때문이다.
천수답이 농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이라도 개척을 해 본 목회자들이라면 이를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농부가 하늘의 장마 비를 기다리며 연장을 챙기듯, 올해도 천수답 같은 교회에 하나님께서 부흥의 파도를 일으키시기 바라며 또 한해의 사역을 시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변화의 물결이 감지되었다. 초라하지만 ‘꿈’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꿈의 이야기이며 ‘믿음은 꿈꾸는 것’이라고 설교를 하고 있다. 시대라고 하는 거대한 강물 위에 떠가는 나룻배처럼 나 자신 스스로가 이미 목회에 대한 재조명에 들어간 것이다.
꿈에 대하여는 이미 그 꿈을 이룬 교회들의 전유물이었다. 그 이유는 꿈의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교회의 목회자가 던지는 비전은 아직은 꿈일 수밖에 없기에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한다. 아직 이루지 못하여 꿈으로만 말할 수밖에 없는 교회들도 꿈을 말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말한다.
오히려 꿈을 말하지 않는다면 꿈이 없는 교회이며 잘못 된 목회라고 감히 말하게 되었다.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니 어차피 천수답(?)이 아닌가? 그건 잘못된 질서가 아니며 모순도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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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하는 경건 (조병수 목사)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