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엽

명절에 들어야 할 소리(이종수목사, 구미 남포교회)


명절이라서 고향집을 찾은 성도들이 많은 주일입니다. 정체된 길 위에서 몇 시간씩 지체하다 보면 여러 가지 불편함이 많을 텐데도 그 힘든 길을 마다않고 부모님을 찾아뵙는 효심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만일 믿지 않는 가문이라면 막상 부모님과 일가 어른들을 만나면서부터 또 다른 고생이 시작됩니다. 그 하나가 제사문제이고 또 다른 것은 이래저래 기독교에 대한 비난들을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사 문제야 내가 제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거기에 반응하는 가족들의 태도도 달라지는 것이어서 별로 억울할 것이 없지만, 교회에 대한 비난은 내 태도와 관계없이 들어야 하는 것이기에 좀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수백억을 들여서 교회를 엄청나게 짓는다더라. 도대체 요즘 시대에 정신이 있는 거냐?’ 라는 비교적 시사성이 있는 비난으로부터 시작해서 ‘대통령이 교회 다니니까 경찰이 스님을 구타하더라.’ 라는 억지논리, ‘교회는 왜 그렇게 많고 왜 그렇게 서로 싸우느냐?, 목사와 장로라는 사람들이 사기를 치더라.’ 라는 고전적인 비난까지 다양하게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칭찬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 어떤 장애인 목사님이 같은 장애인들과 함께 더 힘든 이웃을 돕더라.’ ‘어떤 교회는 매 주 노숙자들을 위해 밥을 지어서 먹이더라.’ 비난도 대부분 틀리지 않고 칭찬도 맞습니다.

그런데 비난과 칭찬에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잣대로 본다는 겁니다. 자신들이 보기에 좋으면 칭찬하고 틀렸다고 생각되면 비난을 하는 겁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왜 교회가 왜 건물마다 자리를 잡게 되는지를 이해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도 다양한 성품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런 칭찬과 비난의 기준을 보면, 대개가 자신보다 강하고 능력있게 보이면 비난을 하는 쪽입니다. 칭찬은 자신보다 약해 보이고 힘든 상황인 경우입니다. 크고 기득권을 가지고 있어 보이는 쪽은 어떤 선한 일을 해도 그것은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크고 기득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한 개인 가정의 분위기라기보다 요즘 우리 사회의 분위기입니다. 비단 기독교에 대해서 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영역에서도 보이는 현상입니다. 안하면 왜 안 하냐고 그러고 하면 왜 그런 식으로 밖에는 못하냐고 비난을 합니다. 권위와 기득권, 성공한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눈길을 보내기 보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활개를 칩니다. 특히 인터넷 매체를 통해 그런 분위기가 급속하게 보급이 됩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가 가져야 하는 자세는 우리를 증명하기 위해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분위기를 감싸 안는 것입니다. 비난하는 이유 뒤에는 자신들이 세상을 통해 상처와 아픔을 경험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원래 기독교는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그 힘을 가진 적이 없었고 언제나 자신의 몫을 감당하면서 묵묵히 용서하고 베풀면서 제 길을 간 것으로 역사를 이어 왔습니다. 당시는 잘 몰랐으나 긴 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기독교가 있었기에 인류의 문화와 역사가 그나마 사람들을 살리고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교회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하면, 증명하려고 맞서기보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들어주면 됩니다. 이번 명절 기간 동안에 그런 여유로운 마음으로 친척들과 교제함으로 언젠가 이 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를 믿게 될 때 자신들에게 먼저 예수를 믿은 좋은 친척들이 있음을 떠 올리고는 뿌듯해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보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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