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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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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잘못 (김기영목사)
사람들이 범하는 과오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이 큰 과오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안다고 생각하므로 물어보지 않는다.

부모가 자기 아들이 밖에서 하는 행동을 잘 모른다. 그런데 남이 말하는 것을 곧이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는 그럴 리 없어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라고 말하면서 이웃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남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래지 않다. 나이가 먹으면서 인생을 좀 알게 되면서 사람에 대하여 좀 생각하게 된다. 인생을 늦게 알게 되는지, 그동안 남을 잘 모르면서 아는 줄로 알고 살아온 것이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인 가족으로부터(부모님, 형제, 자매, 남편, 아내, 아이들), 그리고 교인들, 직업상 관계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들은 것만 전부로 생각해 왔다.

또 아직 살아가지 않은 나보다 연상의 사람들에 대하여 역시 안다고 생각해왔다. 가령 이런 말이 있다 “자네도 내 나이 되어보면 알거야.” 젊었을 때 이런 말을 들을 때 속으로 “뭐 꼭 나이 먹어봐야 아나? 나도 짐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이제 나이 먹어 할아버지가 되어 보니 아버님의 나이가 되어 생각해 본다. 내 아버님이 그때 나에게서 ‘참 서운하셨겠다’고 생각이 들고 무척 후회스러운 마음이 든다.

노인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른다고 무시하던 것이 잘못된 행동인줄 알게 되니 무척 괴롭다. 노인들은 현재 돌아가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면이 있으나 인생에 대하여서는 젊은 사람이 들어야 할 것이 있다. 왜냐하면 인생을 보다 먼저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다. 기술이나 과학 같은 이공학 분야는 젊은 사람들이 뛰어나다고 한다. 첨단을 가는 세상에서 날마다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을 만드는 사상은 배운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삶에서 사상이 정립되어 간다고 한다.

그러면 어린 아이에 대하여서는 잘 아는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어린아이들은 이기적이다고 말한다. 남을 배려하거나 양보하는 것은 할 능력이 없다. 할 수 있는데 욕심이 많아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연령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우리 손자 녀석이 엄마가 과자 하나 달라고 해도 인색하게 주지 않는다. 참 못된 녀석이다. 맛있는 것 엄마에게서 받았는데도 “엄마 하나만 줘”라고 하면 엄마에게도 안준다. 아니 그 많은 것 다 먹지도 못하면서 남기고 가면서 자기가 먹기 싫을 때 엄마 먹으라고 한다. 이런 아이를 볼 때 부모는 섭섭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 나이에서는 이웃을 사랑할 만큼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이 에리히 프롬의 주장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이를 너무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남자 육아를 정부에서 권장하는 것 같은데 꼭 엄마만 아이를 키우느냐 아버지도 아이를 키우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너무 모르는 데서 나온 정책이다. 밤에 아이가 울 때 엄마는 짜증을 내지 않고 끝까지 참고 달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래 참지 못하고 그렇게 귀엽다고 하는 아이에 대하여 짜증을 낸다.

그것은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생리학적으로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엄마에게는 호르몬이 나와서 아이에 대하여 끝까지 참는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지 못한 아빠가 아이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것은 남자가 성격이 나쁜 것이 아니라 생리적으로 여자와 다르다는 것이다.

오늘날 무조건 남녀평등이라는 기준에서 세상 직업전선에 동등해야 한다고 하면서 OECD 국가에서 한국이 여성 취업률이 낮다고 말하는데, OECD가 인간의 삶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성경말씀인가?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50% 대 50% 동등이어야 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뇌과학이 발달한 결과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성인이 되기 전 사춘기에는 아직 판단력을 주관하는 뇌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서 선과 악에 대한 분별이 부족하다고 한다. 미국에서 14살 소년의 살인사건에 대하여 중형을 내린 것이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소년기에는 죄를 죄로 여기는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범죄에 대한 형량을 성인과 같이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기가 지내온 어려웠던 시절을 쉽게 잊어버린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잊어버린다는 속담처럼, 부자가 된 후 가난했던 시절을 말할 때는 성공담을 이야기 할 때뿐이다. 현재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그렇게도 모를 수 있는가?

지난 정부 때 강북을 강남처럼 잘살게 한다고 뉴타운 정책을 발표하니, 여기저기 온통 뉴타운 붐이 일어났다. 그 결과 집값이 오르고 너도나도 집을 부숴 그 좁은 땅에 5채 6채 지어서 지분을 늘려 나갔고 생전 오르지 않던 화곡동 땅값이 치솟았다. 그런데 땅값이 올라 새로 지어도 남는 것이 없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뉴타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세가 오르고 살기가 더 어려워 졌다.

곳곳마다 혁신도시를 세워 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하여 전국의 땅값이 오르고, 그 거품이 10년 째 꺼지고 있다. 돈은 이미 부자들이 가져가고 서민들은 거품만 안고 꺼지니 하우스푸어가 되어 버렸다. 뉴타운이 들어서면 집주인도 개발비를 감당 못해 팔고 이사 간다고 한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발붙일 곳이 없다. 서울에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옛날에 지게군도 서울에 와서 잘된다고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파출부를 해도 서울에 와야 일거리가 많다. 어찌하여 서울에는 부자들만 사는 동네를 만들려는 꼴이 되고 말았다. 뉴타운 정책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주는가?

이러한 모든 것은 가난했던 시절을 모른 정권을 맡은 사람들의 탁상행정에서 나온 결과이다. 좀 가난한 서민들을 살펴보고 정책을 만들었으면, 전철 한 두 번 타고 TV에서 인터뷰하는 것으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서민들의 마음을 알까? 모르면 선거철만 굽실거리지 말고 돌아다니면서 좀 물어 보면 될 것인데 그렇게 물어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남을 모른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서로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들에 대하여 아는바가 적다라고 생각하고 알아가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모른다고 말하자.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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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섬김에는 상처가 있다(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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