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이라 간만에 긴 연휴에 들어갔던 지난 주간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두 세배를 넘는 시간을 마다치 않고 고향집을 찾는 분들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저는 본가와 처갓집이 다 가까이 있어 그런 수고의 행렬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부모님 댁은 일곱 해 전부터 같은 아파트 단지 내의 바로 옆 동이어서 베란다 창문을 열면 대각선으로 서로의 거실을 바라 볼 수 있는 위치이고, 처가댁은 장모님이 돌아가신 뒤 논현동에서 잠실로 옮겼지만 그 또한 5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도 예전에 좀 더 멀리 계실 때는 멀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더니 가까우니 이제는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결국 찾아뵙는 것은 명절 때 정도이니 갈수록 불효의 핑계만 느나 봅니다.
이번 명절에 만나 뵌 부모님들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장인어른은 작년 가을 장모님을 떠나보내서 인지 아니면 당신의 건강이 약해져서 인지 많이 쇠약해 보이셨습니다. 아버지도 최근에 앰뷸런스를 불러 응급실을 다녀오신 뒤로는 영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셔서 의자에 앉아 계신 것 자체가 힘드실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다 보니 식사를 하는 양도 적어지셔서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아버지들이 이렇게 쇠약해 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어머니들의 아픈 것을 보는 것 하고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아들로서 아버지 하고 마음을 열고 감정을 교류할 만큼 다정다감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기에 저 역시 늘 서먹하고 거리감을 느끼는 그런 아들로 지내온 것 같습니다. 그래도 늘 아버지가 있음을 의식했고 아버지가 있기에 뭔가 알 수 없는 든든함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여위어가고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니, 마치 내 존재자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명절 아침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하는 기도를 통해 위로를 받았습니다. 비록 잘 맞지 않는 틀니로 인해 발음이 불편하시고 쇠한 기력으로 인해 목소리에 힘은 없으셨지만, 자녀와 손주들을 축복하고 당신은 살아있는 날 동안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하실 때는 오히려 예전보다 정신과 영혼에 힘을 더 축적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는 가정과는 다르게 아직 믿지 않는 부모님들과 믿지 않는 형제들을 만나는 명절을 보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과 만날 때 가장 마음이 평안해 지는 순간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그 분들의 상태가 아니라 그 분들 주변에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변화를 보게 될 때일 겁니다. 건강도 쇠약해져 가고 경제적으로도 여의치 않고 삶의 기반이 점차 무너져 가지만, 하나님께서 그분들 곁에 가까이 찾아와 주고 계시다는 것을 볼 때 소망이 생기고 마음이 평안해 지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다음 찾아 뵐 때를 기약하면서 힘을 내어 돌아오게 됩니다. 내가 기도 중에 부탁할 이곳을 주님께서 계속 간섭해 주실 것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가족들을 만나고 나면 기도거리가 더 많이 생기니 성도에게는 명절이 주는 복의 의미조차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내 기도가 필요한 가족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명절 때 마다 보고 되새기게 해 주니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대상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하고 믿으신다는 증거일 터이니 ‘이 정도면 나도 가족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아닌가 ’ 라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올 한해 내 기도가 필요한 가족들을 많이 발견하고 그 분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기도의 효자들이 되어 봅시다.
효자(?) 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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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몰입 (정창균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