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엽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기쁜 마음으로 소개하신다.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 칭하시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출애굽의 이스라엘에게, 산 소망으로 영원한 나라를 향하여 가는 나그네인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계시에는 하나님의 목적, 의지, 열심이 있다.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이 이루신다.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더욱 의지하여 인내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시되 가라
-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그는 갔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너의 본토 너의 친척 너의 아비 집을 떠나
내가 그 곳에서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할 것이다.
복의 근원이 되라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니
세계 만민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다(창12:1-3).

Now the Lord said to Abram
“go forth from your country,
And from your relatives, And from your father’s house,
To the land which I will show you;
And I will make you a great nation,
And make your name great:
And so you shall be a blessing;
And I will make bless those who bless you,
And the one who curses you I will curse.
And in you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shall be blessed.”
(창12:1-3, NASB)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하신(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을) 자신의 은혜로운 계획을 작정하시고 진심과 열심으로 펼쳐 나가신다. 이 약속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의 말씀이며 무조건적 순종을 요구한다(그러나 순종 여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아브라함은 신자 됨을 발휘해야 하는 좋은 땅에서 이 특권과 책임을 마음껏 펼쳐 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친히 한 축복의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이 말씀은 창11:1-9의 바벨탑 건설 사건과 비교할 때 그 의미가 분명해 진다. 특별히 “그 때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로 우리를 위해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한 성을 건축하게 하라. 그래서 우리로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땅에 흩어짐을 피하자.”(창11:4, cf. 사14:12)는 표현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하늘에 오르려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위치까지 높이려는 태도이며 인간이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시도이다. 이것은 자기신뢰 이다. 죄는 하나님 앞에서 자존심을 부리는 것이다.

그런데 두 본문(창10:1-11:9 vs 창11:10-12:3)을 자세히 살피면 족보와 함께 묶여 있는 것을 본다. 창세기 10장의 족보는 노아의 후손들의 역사로 바벨탑 건설이 홍수 후 인류 역사의 본질을 규정하는 사건으로 우연이 아닌 역사적 필연임을 강조한다(cf. 창6:5은 인류의 특징적 모습으로 “그 마음의 모든 생각이 악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 의인으로 구원 약속의 담지자이다. 노아 언약은 홍수 후 세계 질서를 규정하는 말씀이지만 전 인류와 현 창조계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 은총적 언약임을 기억하라).

창 9:20이하에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윤리 도덕적 우열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한 결과가 중요하다. 함은 셈과 주.종 관계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상속에서 제외 당한다. ‘셈의 하나님’은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표현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나라는 셈과 맺으신 특별한 관계의 구체적 실현이며 노아 언약의 유기적 발전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운 구원의 계획을 셈의 후손을 통해 펼쳐 나가신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오만(교만)과 자기 확신(자기 신뢰)으로 스스로를 높이고 위하는 자존심의 인간 역사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인류 역사에 하나님께서 다만 사랑하심을 인하여(신7:7,8) 우리를 근본 악과 그로 인한 범죄와 심판의 역사에서 구속, 해방시키셔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축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게 하셨다. 사람들은 불의하여 하나님을 거절하고 독립하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심으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충성스럽게 지켜가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열심이 이스라엘의 역사요 지금 나의 역사인 것이다(시8, 롬8).

이 역사의 주인공답게 자존심을 위하여 신앙을 동원하지 말 것이며, 세상과 사람 앞에 증명 받기 위한 헛된 노력을 멈춰야 할 것이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 충성됨을 보시고(발견하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느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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