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짤막한 기사는 매우 익숙한 내용이기는 하나 자세히 그 뜻을 파악하고
자 하면 까다롭고 어려운 점이 한 둘이 아니며, 이 사건 속에 매우 중요한
뜻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형 에서를 만나게 될 일을 걱정하고 두려워
하면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홀로 남은 야곱을, 두려움과
불안과 초조로 심히 어지러웠을 야곱을 어떤 사람이 찾아와 씨름을 건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사건은 야곱이 하나님과 친히 대면한 경
험,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가까이 경험하고도 내 목숨이 보존될 수 있을까
라고 느낄 정도로 하나님과 더불어 경험한 가장 직접적인 만남이다. 그런
데 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만남의 체험이 하필이면 씨름의 형식으로 이루
어 졌는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이 사람은 그의 이름을 묻는 야곱을 축복하시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을 주신 일이나, 야곱이 이 날 밤에 경험한 일을 가리켜 내가 하나님의 얼
굴(브니엘, peniel)을 대면하여 보았다고 한 말로 미루어 신적 존재, 여호
와의 사자로 호칭되는 분이라고 짐작된다(cf. 창 48:16). 씨름의 결과가 야
곱의 환도뼈를 실제로 위골시킨 물리적 신체적 현상이 있으므로 이 씨름은
실제로 몸을 부딪는 실제적 싸움이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호와의
사자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하시고 야곱과 실제로 씨름 하셨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 씨름이 단순히 힘겨루기가 아닌 것은, 즉 씨름의 의미와 목적은 하나님
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改名하신 일이 증언하고 있다. “네 이름
이 무엇이냐?” 물으시는 말씀에 “야곱이니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는
“나는 이때까지 한 평생 남을 속이고 남의 발목 잡는 자로 살아 온 부패하
고 간교한 자입니다” 라는 고백이다. 야곱의 답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네 이름이 야곱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요 오직 이스라엘로 불릴 것
이라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과 더불어 겨루어 이겼음이라”고 하셨다.
이 씨름은 간교하고 거짓된 술수의 사람, 곧 부패한 야곱의 옛 사람이 하나
님과 사람과 더불어 겨루어 이긴 승리자로 바뀌게 한 것이다. 이 근본적인
영적 변화를 명확하게 드러내어 증거하기 위해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
로 바꾸어 부르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와 밤새어 씨름한 것이 왜 이러한 변화를 가져왔는
가? 이 씨름은 무슨 이유로 하나님과 사람과 더불어 겨루어 이긴 씨름인
가? 야곱의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호세아 선지자
는 이스라엘의 거짓과 반역을 질책하며 그 행위대로 보응하실 심판에 대해
설명하시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외치는 중 그 조상 야곱이 하
나님과 겨룬 일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태중에서 그 형의 발꿈치를 잡은
자요 자기 힘으로 하나님과 겨룬 자라. 그는 천사와 겨루어 이겼으며 울면
서 그에게 은혜를 구하였다”(호12:3,4). “태중에서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
은 자”라는 말은 야곱이 태중에서조차 부패하고 집요한 성품을 나타낼 만
큼 깊이 타락한 자였다는 뜻이기에 야곱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과 겨룬 일
을 긍정적인 면에서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태중에서부터 나타낸 그의 뿌
리 깊은 죄성과 관련된 일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야곱은 태중에서 하나님께
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택하신 자이며 이 사실을 어머니 리브가를 통
해 알리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상속자로 세우시는 때를 기다리
지 않고 “자기 힘”으로, 타락한 인간의 지혜와 술수로 상속자로 확인되
고 세워지기를 매번 시도하였다. 형의 시장기를 이용하여 팥죽으로 장자권
을 빼앗으려 하였으며 아비 이삭을 속이고 에서의 축복을 빼앗고자 하였
다. 밧단아람에서 아내를 얻는 과정이나 집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보인 그
의 행동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상속자로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다.
얍복강가에서의 씨름은 자기 힘으로 축복을 쟁취하려 하여 하나님과 다투
고 싸우는 야곱의 생애를 대표하는 상징적 사건인 것이다.
“천사와 겨루어 이겼다”에서 ‘이겼다’는 야곱이 천사와 겨루되 ‘끝까
지 굴복하지 않고 버티었다’ 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야곱
은 끝까지 자기의 힘, 자기의 부패한 성품을 고집하다 천사로부터 환도뼈
(엉덩이 뼈)를 얻어맞고 무력한 자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근본적으로 꺽으셔서 그가 그처럼 집요하게 자기 힘으
로 하나님과 겨루려는 자세가 헛됨을 무의미함을 보이신 것이다.
바로 이 때 야곱은 울면서 은혜를 구한다. 하나님과 겨루어 쟁취하려던 자
세에서 변하여 울면서 스스로 야곱이라고 이름을 고하여 자신의 죄된 생애
를 고백한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자기 힘으로 이루려던 교만과 자기 신뢰
를 버리고 회개의 눈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세가 된 것이다
(호12:4). 이러한 사실이 “나를 축복하시기 전에는 내가 주를 놓지 아니
하리이다”라는 간절한 호소로 표현된다(창32:27). 하나님께서 “네가 하나
님과 사람을 겨루어 이겼다”라고 그의 승리를 선언하신 것은 이러한 야곱
의 패배,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루려 하던 자기 신뢰의 자세가 완
전히 무너지고 오히려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울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간구하는 믿음의 자세로 변화한 것을 전제로 한 선언인 것이다. 하
나님께서는 이러한 근본적인 영적 변화를 가리켜 다시는 야곱이라 불리지
않고 이제는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리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셨다.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들의 생애를 통하여 진행된 역사의 의미는 “누
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인가?” 라는 선택의 역사이다. 하나님
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상속자가 이스라엘인 것이다. 이스라엘
은 그들의 이름을 듣고 서로를 부를 때 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야곱과 씨름
하셔서 이름을 주신 ‘이스라엘’의 참 뜻을 되새겨야 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이 일은 단순히 몸을 부딪치는 육체적 힘 겨루기
가 아니었다. 야곱은 씨름을 통하여 경험한 것을 “내가 하나님의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고 하였다. 야곱의 씨름
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에 가장 가까이 나아간 영적인 체험인 것이다.
야곱은 이 장소를 “브니엘”, 곧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하였다. 야곱은, 이
스라엘은, 우리는 이제 브니엘을 기억하며 스스로 자신의 죄악과 싸운다.
죄를 알고 거절한다. 절제한다. 자신의 죄악과 싸우면서 하나님과 가장 깊
은 영적 만남을 이룬다. 이 싸움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그의 거룩하시
고 자비로우심을 깊이 체험하게 된다.
날이 밝아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 그는 위골된 환도뼈를 인하여 절고 있
었다. 어두운 밤 동안의 기나 긴 씨름이 끝난 후 새 날이 동 터 밝았다.
“동이 터오니 나로 가게 하라, 나를 놓으라”고 하신 말씀은 야곱이 약속
의 땅에 상속자로서 귀환하는 시간의 촉박함을 알리는 말씀이다. 그의 옛
성품, 속이는 자로서의 부패함,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과 겨루고 싸우는 삶
의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시간이 된 것
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축복을 받은 승리자로
서 새 삶을 시작하는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얻어 맞아 무력하게 된 흔적,
하나님께서 그의 옛 사람을 쳐서 무력하게 하신 은혜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
다. 그가 하나님께 패배한 자, 절름발이, 불구자, 무력한 자가 됨으로써 오
히려 승리자로 세움 받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표였다. “내 은혜가 네게 족
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2:9).
이스라엘이 조상의 이 일을 기억하여 이후 양의 환도뼈 힘줄을 먹지 않았다
는 것은 야곱이 겪은 이 일이 그 한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
엘을 위한 일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면 누구나 기억해야 하는 일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께서 친히 야곱과 씨름하실 수 밖에 없으셨던
이유를 기억하라. ‘이스라엘’ 된 우리의 마음을 진실히 살펴 스스로를 턱
없이 높이는 허상을 깨라. 죄와 씨름하라. 하나님을 뜻을 준행하라. 연습하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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