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풍경이 요즘처럼 상큼하게 느껴지는 때가 없다.
추운 어느날에 앙상한 나무를 적시는 얄궂은 겨울비도 아니고
낙엽이 흐드러진 거리를 을씨년스럽게 적시는 가을비도 아니며
후덥지근한 여름날 지루하도록 내리는 장마비도 아니다.
3년전, 서울에 처음 왔을때만 해도 혜경이는 비가 오면 걷는 걸 싫어했었다.
이유는 땅이 지저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신발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깨끗하게 포장된 길에 비 조금오고 간간히 나뭇잎들이 적셔진 채로 있는 모습이
그 아이의 눈에는 '지저분'하게 보였다보다.
지금은, '비'란 나무와 꽃들을 무럭무럭 잘 키워준다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싫어도 어쨌든 그 땅을 밟고 걸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인지
투덜대지 않고 잘 걸어다니고 있다.
우산을 자기가 들어싶어서 - 빙글빙글 돌리며 장난치고 싶은 탓에- 안달이 날 지경이니
까..
성경에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만 .....
가끔은 이미 지나가버린 일 때문에 괴로워하고 걱정하느라 '오늘'을 허비하게 되는일이
있다.
'오늘' 내가 부딪하게 될 사람들, 경험하게 될 사건들을 기대하고 또 기도하며 , 새로운 하루를, 생명을 갖고 살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하는 맘으로 임해야 할텐데..
나의 어쩔 수 없는 죄인됨과 약함과 성숙되지 못한 것들 때문에 스스로 실망하고 답답해하면서도 또 그렇게 자신을 판단하여 나를 그 형편없는 틀 속에 가두어 버리기도 한다.
상황이 이쯤되면, 나의 주님은 저 멀리 멀리 아주 작아진 모습으로 계시는 '환상'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거룩하신 주님의 모습보다는 형편없는 나의 모습이 더 거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누군가가 그랬지. .. 주님의 사랑은 '파도'와도 같은 것이라고...
한 번 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계속 밀려오고 또 밀려오고.. ..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오늘같이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은 모든 것이 새롭게 피어나는 것이 보인다.
하늘도 땅도 , 나무와 꽃들도 , 오염되었던 대기가 말끔히 씻어지고 모든것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애써'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나의 판단을 버리고 내가 부여잡고 있던 모든것을 버리고 그 하늘을 한참이나 보고 있으면, 그 분 , 파도와 같은 사랑을 내게 부어주시는 그 분의 품속에, 갓난아이같이 , 푸근히 안겨있는 나의 영혼을 느끼게 된다.
주님을 아는 기쁨을 짜릿하게 느끼는 순간이다.
오늘도 .. 가족들 모두 보내고 혼자 남은 텅 빈 집에서 .. 촉촉한 하늘을 보며 머리를 한번 세차게 흔들어보았다.
그 분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내 몸짓이겠지. .... 주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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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의 기회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