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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교회 
Subject  
   모든 섬김에는 상처가 있다(이종수)



‘앗! 조심을 했건만 또 손가락을 배였다.’ 요즘 일주일에 두 어 번은 조심하려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가락이나 손 등에 상처가 생깁니다. 때로는 빵을 썰다가 빵 칼에, 때로는 믹서를 세척하다가 믹서 날에, 때로는 남이 설거지 하느라고 틀어놓은 뜨거운 물에, 때로는 쓰레기 봉지를 묶다가 삐져나온 꼬챙이에 손가락 여기저기에 상처가 납니다. 한 곳이 좀 아물 만 하면 다시 상처가 생깁니다. 서툰 주방 일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 만들어준 영광의 상처 퍼레이드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상처가 생길 때 마다 짜증이 났습니다. 아픔 때문이 아니라 상처로 인해 작업의 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상처에 물이 다면 아프니까 상처 입은 손가락을 보호하려다 보니 설거지나 커피를 뽑을 때 정확한 자세가 나오지 않기에 효율이 떨어집니다. 바쁠 시간이면 남들에게 꾀부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까봐 상처 난 손이라도 바쁘게 움직여 보지만 평소 때와는 주춤거려지는 동작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짜증 속에서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모든 섬김에는 상처가 있는 거 아닌가?’ ‘내가 이 사업을 하는 이유 중 중요한 것 하나는 사람들을 섬기려는 것인데 이 상처는 그 섬김의 과정 중에 생기는 것이다. 그 목적이 아니라면 이런 상처도 생기지 않을 터인데...’ 그러면서 내 손에 생긴 상처로부터 시작된 이 생각은 목자들의 섬김을 거쳐 주님의 섬김에 까지 다다랐습니다. 나는 내 카페에 오는 사람들을 섬기려고 손에 작은 상처가 생기는데 주님은 전 인류를 섬기기 위해 십자가의 상처를 입으시고 결국은 죽음에 까지 이르는 큰 희생을 치르셨던 겁니다.

  

누군가를 섬긴다면서 상처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아직도 섬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섬김은 내 자존심에 금이 가야하고 나의 우월감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섬김을 통해 내 의로움의 만족은 찾는다면 그건 오히려 가증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섬김은 상처를 각오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며칠이면 아물고 마는 손에 생기는 작은 상처 정도가 아니라 오랜 세월 복원되지 않는 마음에 생기는 깊은 골짜기 같은 상처 말입니다. 채찍에 맞으시는 주님의 등 뒤에 파여졌을 그런 깊이의 상처가 누군가를 섬기려다 보면 목사의 마음에, 목자들의 마음에는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섬김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섬김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섬김을 통해 환영과 박수를 기대했었던 것이라면 다시는 누군가를 섬기지 않으리라는 모진 마음을 먹게도 됩니다. 주님은 인류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섬김을 가장 큰 상처의 자리에서 이루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던 것을 육체를 마치는 자리 말입니다.

  

섬김이란 용어가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정부도, 기업도 자신들의 모습이 섬기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국민이나 대중들이 알아주길 바라면서 더 흔하게 쓰이는 용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마음이 거짓이 아니란 것은 압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섬김에 상처를 주는 자가 있다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일 때가 많기에 그 진심을 의심해 보기는 합니다. 교회는 어떤가요? 세상에 섬김의 주도권을 내어 주고는 참된 섬김의 가치를 되찾아 올 마음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꼭 비판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요 몇 주 실제로 섬김을 각오하고 해 보니, 폼 나고 기브 앤 테이크의 전제가 없는 상황 속에서의 섬김은 쉬운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주님이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러 온 것이라고 하셨기에 교회가 그 가치를 되찾아 오고 싶어집니다. 그 섬김을 통해 한 영혼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더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 길을 가는 일에 마음을 먹은 것, 저는 참 감사합니다. ‘앗, 배인 상처에 물이 들어가 퉁퉁 불어 있습니다. 소중한 상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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